세계의 겨울 축제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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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겨울 축제 1편

동지

 

동지(Winter Solstice)의 어원은 “해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라는 뜻의 라틴어 ‘솔스티움(Solstium)’에서 유래되었다.
관련 축제일로는 크리스마스와 하누카, 그리고 중국의 ‘동지’, 인도의 ’마카르 산크란티(Makar Sankranti)’가 있다.
 북반구에서는 12월 20일에서 23일경에 공식적인 겨울이 시작된다. 이 즈음은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시기이다. 흔히 ‘동지’라고 하는 이날은 점차 짧아지던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햇빛의 양과 온화한 기운이 점점 더 늘어날 것임을 예고하는 날이기도 하다.

 동지 축제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전통은 고대 이래로 계속해서 이어진 전통이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12월에 농신제를 지냈다. 농신제가 벌어지는 1주일 동안은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요란한 향연을 즐겼다. 이 기간 중에 그들은 농업의 신인 새턴(Saturn)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서 더불어 동지제도 지냈다. 동지가 지난 후에는 동지에 태어난 페르시아의 ‘빛의 신’인 미트라(Mithras)에 경의를 표하면서 빛의 귀환을 축하했다. 이와 유사하게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디오니 소스신을 섬기는 ‘브루말리아(brumalia)’라고 하는 동지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기독교가 번성해지면서 농신제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크리스마스가 차지하게 되었다. 비록 예수님의 탄신일이 겨울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로마의 달력에 크리스마스가 표시되기 시작한 4세기 중반 이후부터 크리스마스는 동지 근처인 12월 25일로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미트라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어둠의 힘을 물리치고 세상에 빛을 가져온 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지내는 빛의 축제인 하누카 또한 12월이다. 8일 동안 행해지는 이 축제는 기원전 165년경 유대인들이 시리아의 왕인 안티오쿠스를 물리쳤을 당시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그때 유대인들은 성전의 등에 불을 밝힘으로써 성전에 다시 봉헌했다. 영어 ‘solstice’는 라틴어로 “해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지구의 축은 자전 궤도에서 23.5도 기울어져 있다. 정확한 동지시점이 되면 북반구는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며 기울어지는 것을 멈추고 다시 태양 가까운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을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태양이 며칠 간 하늘에서 움직이던 것을 멈춘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동지 축제는 신께 태양이 다시 움직이기를 비는, 혹은 사라진 빛을 다시 되돌려 주기를 비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를 뜻하는 다른 외국어로는 스로제스트봄 크리스토빔(Srozhestvom Kristovym), 펠리스 나비다드(Feliz Navidad), 조이유 노엘(Joyeux Noel), 부오네 나탈레(Buone Natale), 고드 줄(God Jul) 등이 있다.

크리스마스는 가장 크고 화려하며 또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축제일이다. 이는 종교적 믿음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 방방곳곳의 모든 대중매체에서 일제히 이 와 관련된 소식을 알리는 일종의 계절 축하 행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축제인 크리스마스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행사이다. 낮이 가장 짧고 어두운 계절인 겨울에는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빛, 그리고 사랑과 우정 같은 것이 필요했다. 고대 노르웨이인들은 아주 긴 장작에 불을 붙인 다음, 그것이 다 탈 만큼의 긴 시간 동안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보통 12일에 이르는 고대 노르웨이의 크리스마스는 아마도 ‘12일 간의 크리스마스(The Twelve Days of Christmas)’라는 전통의 기원일 것이다.

반면 고대 로마에서는 농업의 신 새턴에게 경의를 표하는 농신제를 동지 즈음의 1주일로 택했다. 그 1주일은 쾌락과 혼돈, 무질서가 연일 이어지는 축제였다. 특이한 것은 농신제 기간 동안에는 평소와는 정반대로 농민들이 대접을 받고 귀족들이 접대를 했다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기독교의 예배력에 포함되어 있는 날이 아니었다. 또한 12월 25일도 성경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4세기경에 율리우스 교황이 농신제에 기독교적인 색채를 가미하기 위한 일환으로써 12월 25일을 교회의 휴일로 정했다. 처음에는 ‘탄생의 축제’라고 했던 이 관습이 이집트에 전파된 것은 432년 즈음이었고, 영국에는 6세기 말에 전해졌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전통적인 동지 축제와 동일한 시기에 실시함으로써 교회의 지도층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대중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 중세를 거치면서 기독교 신앙은 대부분의 이교도 신앙과 이교도의 관습을 대체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집집마다 불을 밝히고, 상록수 장식과 선물을 교환했으며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난 다음에는 사람들이 다시 과거에 이교도들이 축제를 즐기는 방식, 즉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흥청망청 법석을 떠는 놀이를 일삼고는 했다.

미국에 크리스마스가 정착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초기 청교도 정착민들은 신교도인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과 영국에 그가 세운 개혁정부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 크리스마스가 정착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으며, 의회에서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선포한 것은 1870년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높은 인기와 그에 뒤따른 상업화는 종교적 믿음이나 열정과는 무관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가족과 아이들을 향한 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수입의 증가와 함께 생활의 여유에 따른 소비 수준의 향상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 낸 가장 근본적인 변화의 핵심은 산업혁명이었다.

 

 


하누카

빛의 축제, 헌신의 축제, 또는 마카베오(Maccabeus) 가문의 축제라고도 알려져 있다.
하누카는 마카베오 가문이 두 번째로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았을 때, 그들은 성전의 등을 밝힐 기름이 하룻밤 분량밖에 없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기름을 찾아서 채우기까지 8일 동안 성전의 등은 꺼지지 않았다. 이 기적이 바로 전 세계 유대인들이 ‘빛의 축제’를 기념하는 이유이다.

 

사실상 하누카는 ‘봉헌(dedication)’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누키야(hanukiya)의 빛’은 이스라엘어로 가지가 아홉인 촛대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마카베오 가문이 촛대의 불꽃을 8일 동안이나 밝히면서 보여준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지가 아홉인 촛대에서 각각의 가지는 서로 거리가 떨어져 있도록 고안되어서 불꽃이 각각 구별되므로 ‘이교도’의 모닥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원래의 의미대로라면 하누카는 사실 유월절이나 속죄일에 비해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성일이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서구의 유대인, 특히 유대계 미국인들에 의해 하누카는 마치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정도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들은 집안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아낌없이 선물을 주고받았으며, 파티를 열어 이날을 축하하기 시작했다. 아홉 개의 가지가 달린 촛대 외에도 하누카 축제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있다. 수세기에 걸쳐서 지켜져 온 전통 가운데 하나는 성전의 등을 생각나게 하는 재료인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감자로 만든 케이크인 감자 라트케스(latkes)와 젤리도넛인 수프가니요트(sufganiyot)가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다.

 

네 면으로 된 팽이인 드레이델(dreidel)은 단지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안티오쿠스(Antichus) 통치 시에 유대인들을 처벌에서 구한 1등 공신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열거나 율법을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드레이델을 가까이 두었다가 로마병정이 다가오면 성경을 집어넣고 게임을 하며 노는 척 하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


 ‘Santa Claus’는 네덜란드어 ‘Sinter Klaas’에서 유래되었다. 성 니콜라스(St. Nicholas), 세인트 닉(Saint Nick), 크리스 크링글(Kris Kringle), 크리스트킨드(Kristkind), 파더 크리스마스(Father Christmas)라고도 한다.

오늘날에 널리 알려져 있는 동화 속의 산타클로스에 대한 묘사는 아주 단순하다. 즉, 산타클로스는 고향인 북극에서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전 세계에 있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한 사람이다. 그는 선물과 너그러움, 그리고 넉넉함의 상징이다. 정말 그럴까?

부분적으로는 이 묘사가 맞다. 성 니콜라스라고 하는 수도사는 서기 280년경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관대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전설에 의하면 그는 상속받은 재산을 사람들에게 전부 나누어준 다음, 멀리 떠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기일이 12월 6일이었다. 그가 성인으로 추대된 후에는 그의 기일이 그를 기리는 날이 되었다. 네덜란드에는 여전히 성 니콜라스의 날을 기념하고 있으며 아이들은 이날 ‘세인트 닉(Saint Nick)’으로부터 쿠키와 사탕을 받기 위해 신발을 바깥에 내어 놓는다.

‘세인트 닉’의 네덜란드식 애칭은 ‘신터 클라스(Sinter Klaas)’로써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정착민이 그들의 전통을 신대륙에 전파하면서 ‘Sinter Klass’는 ‘Santa Claus’가 되었다.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그의 소설 《뉴욕의 역사》에서 성 니콜라스를 뉴욕의 수호성인으로 만들면서 산타클로스는 더욱 대중화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새롭게 등장한 백화점과 상점에서는 심심치 않게 세인트 닉, 즉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이용한 크리스마스 쇼핑에 대한 광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841년에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상점의 주인이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남자를 고용한 다음 상점 굴뚝에 올라가 있도록 했다. ‘살아있는’ 산타클로스가 산타를 한번 보고자 하는 아이들과 부모를 상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살아있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822년 뉴욕의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Clement Clarke Moore)교수가 딸을 위해 〈성 니콜라스의 방문 이야기〉라는 시를 썼는데, 그는 이 작품 속에서 산타클로스를 뚱뚱하고 마법을 펼치는 능력이 있는 인물로 자세하게 묘사했다. 1881년 정치풍자 만화가였던 토마스 네스트(Thomas Nast)는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 지에 실릴 만화에 산타를 그리기 위해서 무어의 시를 차용했다. 그는 흰 수염이 수북한 둥근 얼굴에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를 그렸다. 그 남자는 털이 달린 밝은 빨강색의 옷을 입고 장남감이 가득 든 자루를 들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탄생된 과정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계절과 축제일 (1%를 위한 상식백과, 2014. 11. 15., 베탄 패트릭, 존 톰슨,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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