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과 게임 2편

상식사전

장난감과 게임 2편

훌라후프

 

19세기 초에 ‘훌라(hula)’가 후프에 붙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훌라후프가 대유행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몸통에 후프를 감고 돌렸던 사람들은 기원전 1000년경의 이집트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말린 포도 덩굴로 만든 후프를 사용했다. 이 다목적의 장난감은 굴렁쇠처럼 막대기를 이용해 땅에서 굴리거나, 오늘날의 훌라후프(hula hoop)처럼 허리춤에서 돌리며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어린 아이들 역시 똑같은 놀이에 빠져 들었다.

14세기 영국에서는 후프에 대한 열기가 온 나라를 휩쓸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금속이나 나무 소재의 후프를 돌리는 일에 열중했는데, 당시의 의사들은 틀어진 등, 심장 마비,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통증을 모두 ‘후프 돌리기’ 탓으로 돌렸다. 영국의 의료 단체에서는 ‘후프를 하면 죽는다(Hoops kill).’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훌라후프가 수입되기 전에 영국인들은 돌아가는 후프 사이로 다트를 던지는 ‘킬 더 후프(kill the hoop)’라는 게임을 즐겼는데 ‘Hoops kill’은 그 게임의 이름을 빗댄 것이었다.

훌라후프라는 이름은 19세기 초반 하와이로 간 영국의 선원이 후프 돌리기와 훌라춤이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 붙여진 것이다. 감각적인 폴리네시아 춤인 훌라(hula)댄스는 짧은 치마만 입은 토플리스 차림의 여성들과 로인클로스(loincloth)를 입은 남성들이 단조로운 노래와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북 연주의 리듬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댄서들은 엉덩이를 파도처럼 흔들면서, 그들의 신을 숭배하고 다산을 기원했다. 동시에 고도로 정형화된 팔, 손, 손가락, 그리고 얼굴 표정과 다양한 제스처(gestures)를 통해 서로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전달한다.

 


요요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요요(yo-yo)는 기원전 550년의 것이다. 미국 최초의 요요 공장은 1928년 산타 바바라에 세워졌다.
이전의 다른 이름은 반다로레(bandalores), 에미그레뜨(emigrettes), 주주(joujous)였다.

요요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난감이다. 줄 위에서 빙빙 도는 2개의 원반으로 이루어진 요요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상 요요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였다. 그리스에서는 그 장난감을 그냥 ‘원반(disk)’이라 불렸으며, 나무, 금속, 혹은 색을 입힌 테라코타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화병 중에는 요요를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가 그려진 것도 있다.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귀족들은 유리나 상아로 만든 요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대혁명을 피해서 이주민이 되었고, 그들이 가져간 이 장난감은 에미그레뜨(emigrettes)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 군인들은 군대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요요를 가지고 놀았다. 그들은 이 장난감을 ‘주주 드 노르망디(joujou(장난감) de Normandie)’ 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이 ‘요요(yo-yo)’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요요의 기원에 대한 가장 유력한 주장은 필리핀 제도의 말레이 인종 가운데 한 종족이 사용하는 언어인 타갈로그(Tagalog)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타갈로그족은 17세기에 예리한 돌을 실에 꿴 ‘요요(yo-yo)’라는 사냥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 요요를 먹잇감에 던진 다음 다시 줄을 당겨서 요요를 거두어 들였다. 바로 이 무기에서 놀이도구로 발전한 것이 요요라는 것이다.

19세기에 ‘반다로레(bandalore)’, 혹은 ‘퀴즈(quiz)’라고 알려져 있던 이 장남감은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필리핀인들은 ‘요요’라 부르는 이 장난감을 특별히 잘 만들고 능숙하게 다루었는데, 1920년대에는 페드로 플로레스(Pedro Flores)라는 필리핀 사람이 캘리포니아에서 요요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두 개의 원반과 원반을 잇는 축, 그리고 축에 감는 실로 단순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요요로 변화무쌍한 기술들을 펼쳐 보이며, 오락거리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원래는 군사용 신호전달이나 정찰 위성(spy sattelite)과 비슷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연싸움 대회에서는 마지막에 날고 있는 연이 우승하는 것이 규칙이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연 애호가들이었다.

오늘날의 연(kite)은 단순하게 오락이나 기분 전환을 위한 도구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연은 군사, 종교, 과학, 그리고 산업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풍요로운 역사적 유래를 가지고 있다. 연은 기원전 1000년경에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에는 연이 주로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 중국인들은 연의 색상, 채색한 방식, 그리고 비행 방식의 차이에 따른 암호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인근 부대에 작전을 전달하는 용도로 연을 사용했다. 기원전 202년에서 서기 220년까지 지속되었던 ‘한()나라’시대에는 연에 대나무 피리를 붙인 다음에 적의 상공으로 날렸다. 연에서 나는 무서운 소리로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중국인들은 적을 염탐하기 위해 사람이 올라타도 견딜 수 있는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크고 가벼운 연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임무의 위험성을 고려해 보면 상당한 수에 이르렀을 것이다. 13세기에 중국을 여행했던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그의 여행기에 중국 범선의 갑판에서 죄수들이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연은 중국으로부터 인도, 일본, 그리고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4세기 타렌툼(Tarentum)의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타스(Archytus)는 연으로 ‘하늘을 나는 실험’을 했으며, 로마인들은 연대의 표시(regimental standard)로 바람자루(wind socks)를 날렸다(오늘날에는 이 바람자루가 비행장에서 풍속과 풍향을 측정하는 풍향계로 사용되고 있다). 서기 700년경 중국의 불교 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연이 일본에 전해졌다. 그들에게는 연이 종교적인 상징물이었겠지만, 일본인들은 연을 높은 곳에 있는 일꾼들에게 물자를 나르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한편,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것은 물론 순전히 재미 때문이었다. 고대 중국의 인쇄물이나 목판화에는 묵직한 꼬리가 달려있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연을 날리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극동지역에서는 연싸움이 일종의 스포츠로 발달했다. 연을 날리는 사람들은 유리와 도기 부스러기를 연줄에 바르고 서로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으려 했다. 12세기 무렵에는 유럽의 아이들이 구멍을 뚫어 휘파람 소리가 나게 만든 연을 날렸다.

연은 과학적인 목적으로도 활용되었다. 15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연의 기능을 통해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다리의 디자인과 공법을 이론화했다. 프랭클린이 번개의 성질을 규명하기 위해 연으로 실험하기 전인(아래를 보라) 1749년에는 스코틀랜드의 기상학자인 알렉산더 윌슨(Alexander Wilson)이 고공(high altitude)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연에 온도계를 부착해서 날리기도 했다.

 


자리차지하기 놀이

 

이 놀이의 노랫말은 1881년 《어미 거위(Mother Goose)》에 처음 소개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노랫말은 1664년~65년에 일어난 ‘런던의 대역병(Great Plague of London, )’을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어린 아이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놀이를 즐긴다. “Ring around the rosy(장미꽃 주변을 돌아요.)/ a pocket full of posies(주머니 가득 꽃을 채워요.)/ ashes, ashes(재다, 재야.)/ we all fall down.(우리 모두 쓰러져요.)”

이 노래는 1881년 《어미 거위(Mother Goose)》라는 책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지은이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의 구전동요이므로 그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 노래는 역사적으로는 매우 암울했던 시기인 1664년에서 1665년 사이, 즉 런던에서 전염병이 기승을 부렸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일명 ‘런던 대역병’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난 그 시기에 약 70,000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는 도시 인구 7명 가운데 1명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였다.

선()페스트, 혹은 페스트라고 불리는 질병의 초기 증상은 피부에 동그랗게 발진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 동요의 첫 번째 줄에 해당하는 가사의 원래 내용인 ‘ring-a-ring o′roses’는 바로 이 발진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페스트가 악취에 의해 전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향기가 나는 허브, 혹은 향기로운 꽃잎이 페스트를 예방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두 번째 가사에서는 달콤한 향기로 질병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인 ‘ashes, ashes/ we all fall down.’은 페스트로 희생된 사람들을 화장하는 장면을 노래하고 있는데, 오늘날 불리워지는 노랫말인 ‘ashes, ashes’는 원래 가사에서는 ‘a-tishoo! a-tishoo!’로 표현되어 있다. ‘a-tishoo! a-tishoo!’는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의 심한 기침소리를 묘사한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장난감과 게임 (1%를 위한 상식백과, 2014. 11. 15., 베탄 패트릭, 존 톰슨, 이루리)

'상식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제도  (0) 2021.12.23
착한 임대인 세액 공제  (0) 2021.12.23
장난감과 게임 1편  (0) 2021.12.22
세계의 겨울 축제 2편  (0) 2021.12.22
세계의 겨울 축제 1편  (0) 2021.12.22